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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강동구입니다.

1971년 12월 5일 경북영주 전기불도 들어오지 않는 조그마한 시골마을에 3남 5녀의 막내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가정형편은 그리 넉넉하지 못했지만 항상 성실하게 살아가시는 부모님의 지도아래 심지가 굳고 반듯하게 살아가도록 가르침을 받으며 성장했습니다.

52세에 늦둥이를 낳으시고 아버님이 하신말씀이 내가 이 녀석의 뒷바라지를 잘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부터 하셨다고 합니다. 가난한 농촌에서
8남매의 뒷바라지를 하시기가 힘들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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넉넉하지 못한 가정 형편으로 인하여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1987년 부산으로 내려가 일급 3,000원을 받으며 공장생활을 시작 했습니다. 그러나 그 생활을 오래할 수 없었습니다.

출,퇴근시간 기름때 얼룩진 작업복차림으로 등,하교길 또래들과 마주칠 때 부러움과 창피함이 교차하면서 어떻게든 고등학교에 진학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으며, 공장 생활에서 모은 돈을 가지고 그 이듬해 영주공업고등학교(기계과)에 진학 하였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경기도 부천시에 소재한 기계 제작업체에 취업을 하였습니다.

매일 반복되는 잔업,철야에 휴일도 편히 제대로 쉴 수 없는 고된 노동강도와 비인간적, 비인격적인 대우가 열아홉 어린나이인 저에게는 감당하기 너무 힘들었습니다.

지긋지긋한 공장생활을 청산하고 대학진학 준비를 시작하여 유한대학에 진학 하였습니다. 합격자 발표가 나던 날 주위의 다른 합격생들은 합격증을 받아들고 기뻐할 때 저는 그저 앞이 막막했습니다. 또다시 홀로서기를 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합격증을 받아들고 부천 전 지역 신문사를 누비며 숙식이 제공되는 신문사를 물색하여 조선일보 역곡지국에 신문배달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며 대학생활을 시작 했습니다.

그러나 92년의 사회상황은 저를 학업에만 몰두하게 할 수 없는 군사정권 말기의 시대상황을 직면하고 총학생회 간부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방학 때엔 분식점 배달원으로 학비를 충당하며 어렵게 1학년을 마무리하자 징집영장이 나왔습니다.

징집영장을 통지받고 고민 끝에 군 입대보다는 산업체 병역특례 기능요원으로 군복무를 대체하는 것이 스스로 자립하는데 많은 보탬이 될 것 같다고 판단, 부천에 소재한 쉐프네커풍정(전풍정산업)에 입사를 하여, 학업과 국방의 의무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그저 묵묵히 직장생활을 해가던 저는 1996년 노동법 날치기 사건을 접하면서 끓어오르는 분노와 허탈감에 잠시 방황하다 노동조합 간부생활을 시작 하였습니다.

노동조합 간부생활을 시작하며 노동계의 각종 현안문제로 인하여 대정부투쟁과 많은 집회현장들을 찾아다니며 노동자들의 요구를 목청껏 외쳤지만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노동조합 대의원,부위원장,위원장직무대행,사무국장직을 역임해 오면서 많은 경험과 고민이 있었습니다. 내가 속한 쉐프네커풍정에서 조합원들의 의식과 참여를 높이기 위해 동아리를 만들고 교육을 확대하고 다양한 사업들을 통해 일정성과를 이루어 냈지만, 제가 속한 노동조합의 변화만으로는 그 한계가 너무 컸습니다. 조합원들과 함께 불우이웃돕기 바자회, 일일주점을 하고 소외된 이웃들을 찾아다녔지만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저마다의 가슴 아픈 사연들을 가지고 있었고 그 수가 너무나 많아서 가슴만 더 아프고 한계를 느낄 수밖에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2003년 한국노총 부천지역지부에서 정치참여를 선언하고 열린우리당 창당부터 함께 할 것을 결의하여 조합원 교육을 통해 대부분의 조합원들을 열린우리당에 입당시켰고, 내 스스로도 정치 참여를 통해 많은 변화들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을 알아가는 시기였습니다.

2004년 총선 이전에 치러진 경선과 총선 참여를 통해 각종 공약들의 준비하면서 노동조합에서 내가 해야 할 일말고도 정치 참여를 통해서 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해 눈뜨는 계기가 되었고, 노동자 외에도 우리 주변에는 올바를 정치를 통해 도움을 줄 수 있고, 도움을 기다리는 많은 곳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결심했습니다. 내가 노동조합 간부로써 열심히 살아온 것처럼 2006년 지방선거에 기초의원으로 출마 당선되어서 짧지만 노동자를 위해 살아온 제 삶의 폭을 넓혀서 이 사회 정보부족으로 잘못된 정책으로 힘들게 생활하는 많은 사람들을 위해 살아보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지금껏 제가 힘들었지만 스스로 개척하며 열정적으로 살아온 시간들을 앞으로는 열린우리당과 함께 정치개혁을 통해 굴절된 우리의 정치사를 바로세우고, 올바른 정책을 통해 이 사회 구석구석 따뜻한 손길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의지할 곳을 만들어주고 이 시대 최대의 화두 사회양극화 해소에 일조하는 그런 삶을 살고 싶어 감히 지방정치에 뛰어 들 것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